시찰단의 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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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사(修信使):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 파견하던 사신을 통신사라 했는데, 1876는 강화도 조약 이후 조선, 일본 두 나라가 동등한 입장에서 사신을 교환한다는 뜻에서 수신사로 이름을 바꾸고, 이해 2월22일 일본의 요청에 따라 김기수를 정사(正使)로 한 첫 수신사를 일본에 보냈다. 수신사 일행 75명은 일본기선 황룡호를 타고 일본에 가서, 새로 지은 그들의 관아, 군관학교, 병영, 병기창, 학교, 조선소 등 근대화된 시설들을 시찰하고 돌아왔다. 1880년에는 김홍집 일행이 수신사로 일본에 파견되었다. 수신사들은 귀국하여 일본의 제도를 본따서 조선의 제도를 개혁할 것을 주장했지만, 청나라를 시찰하고 온 김윤식등 영선사 일파와 의견 충돌을 빚었다.그리하여일본에 갔다온 수신사 일행은 대개 개화파에 속하게 되고, 영선사 일행은 거의 보수파가 되었다.
조사시찰단(신사유람단): 수신사로 다녀온 김홍집 등이 일본의 문물을 배워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자 이에 정부에서는 박정양, 엄세영, 강문형, 어윤중, 홍영식, 조병직 등을 정식위원으로 하고 그 밑에 각각 이들을 보조하는 수원과 통사 종인 각 1명씩을 딸려 평균5명으로 1반을 편성한 신사유람단을 보냈다. 이들은 약 4달 동안 일본에 머물면서 주로 도쿄와 오사카 등지에서 문교, 내무, 농상, 외무, 대장(大藏), 군부 등 각 성(省)의 시설과 세관, 조폐 등의 분야 및 제사(製絲), 잠업 등에 이르기 까지 두루 살펴보고 돌아왔다.
영선사(領選使): 1881년 신식무기의 제조 및 사용방법을 배우기 위해 김윤식을 영선사로 삼아 유학생 69명을 인솔케 하여 청나라로 보냈다. 그들은 천진기기창에서 무기제조술을 배우다가 1882년 임오군란이 터졌다는 소식을 듣고 반년 남짓 만에 돌아왔다. 그러나 이들은 최초의 신식무기 제조창인 기기창을 삼청동에 설치하는 데 큰 몫을 하게 되었다.
조선책략(朝鮮策略): 수신사로 갔던 김홍집이 저자인 황준센에게 직접 받아와서 고종에게 받쳤다. 주 내용은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막기위해 조선, 일본, 청은 서로 협력하고 미국과 연합하는 외교책을 써야한다고 주장하였다. 고종은 이 책의 내용을 복사하여 전국의 유생들에게 배포케 하였다. 그 결과 보수적인 유생으로 하여금 양이 배척정신을 버리고 개화의 필요성을 느끼도록 도움을 준 반면, 영남만인소와 같이 대대적인 위정척사운동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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