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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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세종 오늘의 세가지 포인트


대왕세종 오늘의 세가지 포인트 ....EP09

 

너무나도 재미있게 보고 있는 대왕세종...오늘 대왕세종을 보다가 좀 아닌 것은 조금만이라도 바로 보고 지나갔으면 해서 이렇게 글을 적습니다. 두산백과사전만 들춰봐도 대왕세종에서 나오는 내용이 그리 정확하지 안은 사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만...대왕세종의 관점은 왕권을 두고 치열한 정치 공방이 이뤄졌다는 것을 그 스토리로 재미있게 진행하고 있습니다만 ... 인물들에 대한 배경은 조금 바로 알아야겠습니다.

 

1.       경녕군은 왕이 될확율 0%

 

 

<< 경녕군은 사초에도 그다지 많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일단 나오는 인물 중에 경녕군 이라는 효빈의 자식은 그 당시 어떠한 형태로도 왕권을 바라 볼 수 없는 상황 이였습니다. 그 이유는 지금 왕으로 나오는 태종이 일으킨 1?왕자의 난의 의미 때문입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좀 복잡하지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서 태조 때의 사건을 봐야 하는데요 그것은 세자책봉 문제로 시작됩니다.

 

 

<< 고려부흥을 위한 왕씨 세력이 존재한다는 가정은 참으로 잼있지만 거의 그러기는 불가능 했습니다. 일단 왕씨들을 거제도와 강화도로 유패시킵니다. 2차로 모반비슷한 사건이 있자 모두 배에 태우고 배를 띄운뒤 바닥에 구멍을 뚫어 모두 수장시켜 버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이 살아남긴 했지만 잔혹한 태조, 정종 그리고 태종때 죽음의 트라이엥글을 벗어나는것이 최대한 그들이 할 수 있는것 이었습니다. >>

 

 

태조가 건국을 한 이후에 세자 책봉 문제가 거의 바로 불거집니다. 그 이유는 마땅히 세자가 되어야 할 태조의 장남이고 고려의 유신이던 진안대군 이방우가 세자 되기를 거부하고 가족을 데리고 산속으로 숨어버립니다. 그 때문에 적장자가 사라져버린 이성계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태조 성계는 당시 두 명의 본처와 6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 태종이 만들어준 핏빛 카펫을 밟고 세종대왕은 성군이 될 수 있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관직을 가진 사람들이 고향에 두는 향처와 서울(개성)에 두는 경처라는 두 명의 본처를 두는 것이 관습 이였습니다. 그런 이유로 양가 댁 집 규수 두 명을 모두 본처로 데리고 있던 이성계의 향처는 즉 첫 번째 부인은 신의왕후 안변 한씨로서 그 소생으로는 진안대군 방우, 영안대군 방과(중종), 익안대군 방의, 회안대군 방간(2차 왕자의난을 일으킨), 정안대군 방원(태종: 1차 왕자의난을 주도하고 2차 왕자의난을 진압한), 덕안대군 방연(일찍죽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경처였으면서 태조가 왕이 된 후에 중전으로 책봉 받은 신덕왕후의 소생으로는 방번과 방석이 있었고, 이성계의 첫째 부인이던 신의왕후 안변 한씨는 이성계가 왕이 되기 직전에 병으로 죽습니다. 그래서 둘째 부인이 중전이 됐던 거죠.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두분 모두 본처입니다.

 

 

 

<< 정종 이방과는 고려때 관직을 한 사람이고 왕권에는 딱히 그 뜻이 없던사람으로 어부지리로 왕으로 기록된 사람입니다. 그의 능에 200여년간 시호도 없었고 그 자식들을 모두 절에 보내버릴정도로 몸사리던 사람으로 저따위로 화내고 그랬으면 아마 오래전에 죽었을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적통을 이을 첫째가 세자책봉을 거부하고 일가를 데리고 세자책봉 즈음에 사라져버리자 세자책봉문제가 생겨서 결국 집안의 막내이고 당시 중전이던 신덕왕후의 소생인 방석을 세자로 앉혀버립니다. 서열로 따진다면 방석이 아니라 바로 후에 중종이 되는 방과가 세자가 되야 마땅했지만 그 당시 중전이 신덕왕후임으로 방과가 세자가 된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점을 이방원 1차 왕자의 난 때 대의명분으로 삼습니다. 그럼으로 효빈의 자식인 경녕군이 왕이 되고자 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 입니다.  경녕군을 세자로 책봉한다 던지 하게되면 1차 왕자의 난이 무의미하게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2.       삼봉 정도전, 하륜 그리고 이숙번

 

 

 

<< 주요 공신들중 천수를 다한 사람은 아마 몇 안될 것 입니다. 이숙번과 이종무가 함께 앉아있는 이유는 이종무는 태종의 사촌이고 개국공신이고 1,2차 왕자의난때 공을 세운 사람이고 이숙번은 바로 그 난의 주인공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태종이 너..죽어라 하면 진짜 자진해서 죽을 정도의 충성심을 가진 사람들 이었습니다. 왕을 바꾸자는 말을 할정도의 힘을 신하들이 가지고 있지 못했다는 것 입니다. 특히나 이숙번이 그런소리를 할 수는 없는 것 입니다.>>

 

삼봉 정도전은 이성계를 왕위에 올려놓고 딴 생각을 합니다. 정도전이 원하던 왕은 그져 상징적인 인물이고 아래 똑똑한 재상을 왕이 뽑아서 나라를 운영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인물 이였습니다. 정도전이 저술한 많은 책들에 그런 점들이 보인다고 합니다. 반대로 하륜은 조선초기 지금은 신하들이 권력을 가질 때가 아니라 강력한 왕권으로 사병을 혁파하고 지방토호 세력의 권력을 뺏어 와서 강력한 왕권을 이뤄야 한다는 생각 이였습니다. 그 때문에 이 두 천재는 물과 기름의 관계가 되어버린 것 입니다. 고로 대왕세종에서 나오는 하륜의 태종 보채기 등의 모습은 조금 달랐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태종실록을 보기에는 하륜과 태종이 짝짜꿍이 되어서 많은 사람을 죽이고 귀향 보내고 개국공신과 옛 고려유신으로 가득 차있던 조선의 조정을 깨끗하게 청소합니다. 물론 이에 앞장섰던 사람은 다름아닌 이숙번 입니다. 이런 이숙번과 하륜이 감히 태종한테 맞설 수가 없었던 것 입니다.

 

 

<< 이 드라마에서는 황희정승께서 좀 터프하게 나오시는군요. 황희는 고려 유신으로 고려가 망하자 숨어버렸다가 나중에 등떠밀려서 관직을한 사림계열의 한 사람으로 터프한것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분입니다. 하지만 정책을 결정하고 주장할때는 목 내놓고 했습니다. 가령 양녕대군을 패세자 시킬때는 강력하게 막아서서 귀향을 가게 되고 몇년후 자신의 등극을 방해하던 이 황희를 세종은 중용합니다. 그리고 예조판서가 왜 형장에 나가있는지 좀 궁금했습니다.>>

 

나중에 하륜은 태조실록을 편찬하는 등의 업적을 남깁니다. 조선 초의 모든 법과 제도 질서는 이 두사람 정도전과 하륜의 공동작품 입니다. 이런 하륜이 재상정치를 지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바로 자기 목에 스스로 목을 걸고 죽겠다는 말과 같다고 봅니다. 조선왕조의 정치는 경연정치라고 할 정도로 경연에서는 현 국사를 많이 논의 합니다. 아마도 하륜이 함께 논의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했다가 따당했다면 이해가 갑니다만 태종이 하륜을 그렇게 박대하는 모습은 조금 고개가 갸우뚱 했습니다.

 

뭐 제가 타임머신을 타고 나온건 아닌지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제가 보는 관점은 최소한 하륜이 태종에게 경연을 빼먹지 말라고 강요하는 장면은 조금 말이 안됩니다. 이미 그 당시 하륜과 태종은 짝짜꿍 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공신인 하륜을 태종이 놔뒀을리 만무하죠? 하륜도 좌천당합니다.

 

 

<< 중전 민씨 일족은 멸문지화를 당하게 됩니다. 민무구, 민무질 형제를 제주에 유패시켜서 사약과 비단끊을 내려서 죽인것도 모자라 민무회, 민무휼 형제도 죽여버립니다. 외척의 세력이 강해지는것을 그만큼 경계하던 태종이였습니다.>>

 

 

태종이 오로지 바라는 것은 강력한 왕권 이였기 때문입니다. 공을 가지고 있는 신하는 누구도 조정에 두고 싶어하지 안았습니다. 외척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민씨 일가가 멸문지경에 이르고, 김씨 집안이 풍비박산 났으며, 심온 은 사약을 받고 죽고 그 일가는 관노로 끌려가게 됩니다. 딸은 왕비이고 아버지는 사약 받고 죽고 그 어머니는 관의 노비로 있는 아주 희한한 형태가 나타나게 됩니다. 태종은 그렇게 철저하게 외척과 공신을 왕권강화의 목적을 위하여 철저하게 배격합니다. 

 

 

<< 효빈은 사가에 있을때 중전의 몸종이였다고 합니다만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그 출신이 좋은가문은 아닌것은 확실합니다.>>

 

 

3.       양녕대군은 기인이다? 미치광이다?

 

양녕대군은 나중에 어리 사건으로 인해서 패세자 됩니다. 지금 정종의 기생 건드리는 건

그냥 한번 대박 혼나고 맙니다만 드라마에선 아주 중대사건으로 다루었군요. 사실 좀 중대사건

이긴 하지만 이 사건에 대해서는 사초에 두 세줄 나오고 맙니다. 직접적으로 패세자 될 수밖에

없었 던 사건인 어리(於里)사건을 검색해 보시면 사초에 원문으로 기록된 관련자들만 수십명

이를 도로 당시에도 엄청난 스캔들 이었습니다.

 

물론 어리 사건에 초궁장도 등장을 합니다. 하지만 그 근본적인 이유는 구종수, 이오방과 관련

이 깊은듯하고 초궁장은 기생이던 어리(於里)를 이전에 알 던사람이고 이를 양녕대군에게 소개

시켜준게 아닌가 하는 망상을 좀 해봅니다만 하여간 이 사건으로 국문이 있을때 초궁장의 이름

이 다시 등장하긴 합니다. 구종수, 이오방과 함께 말입니다. 구종수, 이오방으로 누가 나올지

기대되는군요 ^^

 

 

 

<< 양녕대군의 허본좌를 능가하는 기행은 이제 시작일 뿐 입니다.>>

 

지금 양녕대군이 정종의 기생을 건드리는 것은 시작일 뿐이고 그 이후에도 양녕대군의 기행은 허본좌를 능가하는 기행들로서, 조선왕조 역사상 보기 힘든 스캔들로 이어지게 됩니다.

 

조선왕조 실록에서 양녕대군 보다는 세자 이제로 검색을 해보시면 양녕대군의 기행을 더 찾아 보실 수 있겠지만 양녕대군의 기행은 하늘을 뚫고 땅을 흔드는 그런 분 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분에 대해서 세종은 예를 다해서 높이고 양녕대군을 죽이라는 상소문, 양녕대군이 역모를 계획한다는 상소문이 빗발쳐도 세종은 양녕대군을 우대하고 정사를 함께 논의하는 등 정치적 파트너로서 둘의 우애가 남달랐다고 합니다.

 

 

<< 앞으로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기대 이빠이 만빵입니다. >>

 

똑똑한 충녕대군을 왕위에 앉히려고 미친 척을 했다는 설화도 있으나 그보다는 왕권에 별 관심이 없었던 듯 합니다. 하지만 똑똑하고 글씨도 잘 쓰던 사람입니다. 미친 것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습니다. 무예에도 뛰어나서 공부를 하다가 나와서 까마귀를 표창으로 잡아 죽인 일화도 있습니다양녕대군은 세조 때에도 여러 궁에서 벌어지는 파티에 참여하여 이야기꾼 노릇을 톡톡히 하기도 합니다. 재미있던 분인듯 합니다. 파티마다 불려 다니셨으니...웃기는 얘기로 왕인 세조의 면전에서 슬쩍 비꼬면서 세조를 까대도 맘넓은 세조는 씨익 한번 웃고 말기도 합니다.

세조의 왕궁 파티에 자주 불려다니던 사람중에는 정종의 아들 던천군 이후생의 아들인 신종군 이효백도 나옵니다.

 

아 참고로...정종이 상왕임에도 불구하고 몸사리면서 태종으로부터 박대받고 끽소리 못했다는 증거는 바로 이 덕천군에서 찾을수 있는데요,  정종의 능에 시호가 200여년간 없었던것을 그 후손들(신종군을 포함 그의 후손)이 빡빡우겨서 겨우 받아낸것은 둘째 치더라도, 덕천군은 군으로 칭호도 처음에 못받았었고 던천정으로 불리우다가 나중에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 왕위를 찬탈하고 나서 그 공을 인정받아 신종군 이효백(덕천군아들) 덕에 군으로 승격이 됩니다.

 

세조도 쿠테타로 단종을 몰아낸 잔혹한 왕이지만 그분 임기동안 참 재미있는 일들이 많았던 왕이라 나중에 정리해서 글을 한번 쓰고 싶은 분이죠.

  

앞으로 좀 더 드라마의 진행을 봐 가면서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이렇게 재미있는 사극은 정말 오랜만 인 듯 하군요 ^^

너무나도 재미있는 대왕세종... 조금 바뀐 사실은 알고 있자구요 ^^

 

자세한 역사적 사실은 직접 찾아보세요~

 

http://blog.naver.com/nownext

 

PS: 참고자료 없이 아는 대로 쓴 것이라 점을 참고하셔서 틀린점 있으면 알려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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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18 18:35 2008/04/18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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