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소성 원칙과 종말론
희소성의 원칙
세상은 풍요롭지 못하다.
어려운 사람들, 굶는 사람들, 아픈 사람들이 너무 많다.
환경문제, 에너지문제, 사회문제가 넘쳐 난다.
그런데, 이러한 풍요롭지 못한 현실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알고 보면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인위적인 조작이다.
희소성의 원칙이라는 거짓의 피막이 진실을 얇게 덮고 있는 것이다.
오직 소수만이 풍요를 누릴 수 있다는 거짓.
인위적으로 지탱되고 있는 거짓의 피막을 살짝 걷어내면
찬란한 풍요의 세계가 펼쳐진다.
그것이 진실이다.
부족한 화석연료, 오염된 자연환경, 극심한 빈부차이
이 모든 것들은 불필요하게 인위적으로 지탱되고 있다.
모든 에너지 해결책, 진보한 과학기술을 억누르는 방법으로.
모든 치유의 해법을 억누르는 방법으로.
교육과 언론을 포함한 모든 정보전달매체 장악을 통해서 정보확산을 막는 방법으로.
그러니까
풍요롭지 못한 현실은 인위적으로 조작된 것이고,
풍요로운 진실이야말로 진리다.
사람들이 희소성의 원칙에 목을 매고 믿고 있는 한,
풍요롭지 못한 현실은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사람들의 신념이 현실을 구현하기 때문이다.
현실의 인위적인 조작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사람들의 잘못된 신념, 즉 무지다.
사람들이 영적 각성을 통해서
풍요로운 진실을 알게 될 때,
현실은 풍요로와질 것이다.
종말론
희소성의 원칙, 좋은 것은 제한되고 있고, 오직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것을 누릴 수 있다는 이 조작된 주장은 종말론으로 귀결된다.
결국에는 오로지 선택된 소수, 영적으로 “진화한” 소수만이 살아 남아서 행복을 누린다는 것이다. 절대 다수는 그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종말론은 희소성의 원칙이 역사의 종언과 만나는 지점이다.
그것이 종교적인, 유태-기독교적인 색채를 갖고 있던, 과학주의적, 유물론적인 색채를 갖고 있던, 컬트적인 색채를 갖고 있던, 뉴 에이지적인 색채를 갖고 있던, 전통사상적인 색채를 갖고 있던, 생태주의적 색채를 띄고 있던지 간에, 소수만의 구원, 소수만의 행복을 고집하는 모든 주장과 예언은 희소성의 원칙 아래 갇혀 있을 뿐이다.
다수의 자연도태를 통한 “정화”와 소수생존은 진실어린 예언이 아니다.
적자생존, 자연선택, 희소성 원칙의 종교적 적용일 뿐이다.
구역사의 종언과 새역사의 시작을 희소성 원칙의 필터를 통해서 곡해하거나 왜곡한 무지의 소치에 불과하다.
우생학과 신지학, 그리고 인종주의를 결합해서 “정화”의 적극적인 실천에 나선 나찌즘은 그러한 왜곡의 극단적인 예다. 신지학의 영향을 받은 이들 중에서 히틀러와 나찌즘을 “정화의 요원”으로 상찬하는 이들이 있는 것은 이유가 있다. 나찌즘 자체가 신지학의 영향을 받아서 티벳으로 “상승한 마스터들”과 세계를 정복할 초능력을 찾기 위해서 SS 장교들을 파견한 정치적 컬트였던 것이다.
진정한 진실은 희소성의 원칙 밖에 있다.
진정한 진실은 풍요로운 우주 안에 있다.
진정한 진실은 무한한 의식과 함께 한다.
소수만의 선택을 주장하는, 희소성 원칙에 입각한
종말론은 진실일 수 없다.
그것이 무한한 의식, 즉 신의 뜻일 수가 없기 때문에.
종말론이 허상이라는 걸 알게 되면
종말은 오지 않는다.
우리 각자가 할 일은 앞으로 나아갈 것을 선택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각자의 선택에 달려있다.
아직까지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른다.
자유로운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선택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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